어린 시절 ‘빵돌이’에서 지금의 ‘당대표’가 되기까지 더 나아가 환한 웃음 세균을 퍼트리고 있는 정세균 의원의 히스토리 속으로 ~
-어릴 적 ‘빵돌이’이라는 별명은 어떤 계기로 붙여졌는지 궁금합니다.
화전밭을 일구던 전북 진안의 산골마을에서 자랐습니다. ‘밀기울’ 수제비도 반가울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지만 아버님은 늘 공부를 강조하셨지요. 그 덕분인지 취학 전 한글과 천자문을 뗄 수 있었고, 한해 일찍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전 과목 만점에도 중학교를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입학 자격을 따내야 했습니다. 빨리 취직해야 한다는 생각에 진학한 전주공고를 1등으로 다녔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꿈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인문계 전학을 결심하고 찾아간 곳은 전주 신흥고였습니다.
무작정 찾아와 전학을 받아달라는 당돌한 아이에게 교장선생님께선 전학은 물론 학비를 벌수 있도록 학교매점에서 빵을 파는 일까지 주셨지요. 쉬는 시간마다 빵을 팔기위해 매점으로 달려가야 했던 제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 ‘빵돌이’였습니다. 하지만 매일 놀림을 당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별명이었습니다.
-정치에 대한 꿈을 언제쯤 갖게 되셨는지요.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나간 읍내에서 선거벽보를 보면서 언젠간 나도 저곳에 내 얼굴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선출직 경험은 고등학생 때입니다. ‘빵돌이’가 학생회장에 출마해 첫 선출직에서 당선된 그 당시 자부심에 가슴 벅찼던 그 순간... 어릴 적 배운 웅변 솜씨로 연설 할 때의 짜릿함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인권변호사의 꿈을 품고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형편은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종로구 팔판동에서 입주과외를 얻어 생활비 걱정은 덜 수 있었습니다. 고시준비를 하던 중 유신개헌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고 법조인의 길을 접었습니다. 이후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정치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빵돌이’ 시절의 꿈을 고려대 총학생회장이 되어서 다시 한 번 꾸게 되었던 것이지요.
-정치에 발을 딛게 된 시점은 언제였나요.
1994년 선거공영제 도입으로 돈 안 드는 선거가 가능하다는 뉴스를 접하고 정계진출을 결심을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젊은 피’로 발탁됐지만 어떤 의미에선 선거공영제를 도입한 김영삼 대통령이 저의 정치인생을 열어주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1996년 4월에 첫 번째 국회의원에 도전하여 상대를 40%의 표차로 따돌리고 입성하게 되었죠. 초등학교 5학년 때 담벼락 포스터를 보고 꾸었던 꿈이 30년 만에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5대 국회 4년 동안 정말 황소처럼 일만 했습니다. 실력이나 배경이 첫 번째는 아니더라도 성실성만큼은 299명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고 싶었답니다. 실제 초선의원 시절이었던 1998년, 중앙일보가 실시한 국회의원 평가에서 기라성 같은 선배 동료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두 번의 정책위의장, 산자부장관, 그리고 세 번의 당대표라는 타이틀은 어디서 비롯되었다고 보시는지요.
세 번 당대표에 선출된 배경은 ‘빵돌이’ 시절부터 몸에 밴 성실성,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을 갖췄기 때문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허허...
여러 중책을 맡는 과정에서 체득한 것은 설득과 조정, 희생과 결단, 통합의 리더십이었습니다. 리더는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또한 힘이 있다고 과시하거나 우쭐해선 안되고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은 리더에게 있다는 점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선당후사’는 정치인 정세균의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종로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축소판인 종로에서, 온몸으로 소통하고 호흡하며 문제들과 부딪혀 해결해낼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종로에서 제시하고 싶고, 진정한 소통을 보여주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20대 국회에선 청년문제 해결에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청년문제는 부모세대의 문제기도 합니다. 취준생 아들을 둔 아빠로서 청년일자리 만들기에 앞장설 생각입니다.
제 인생 마지막 총선에 임하면서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을 마음에 새깁니다. 이웃과 겨레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