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한순간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아무리 절친한 사이일지라도 경계하기 마련이고 의심이 짙어지면 금이 가는 건 시간 문제다. 믿음을 잃게 되면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주변 인심이 떠나간다.
신용을 잃고 살면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기 쉽다. 믿음이란 행동으로 나타나 마음으로 통하는 정신작용인 까닭에 돈으로 살 수 없고 재주로도 생산할 수 없다.
사고파는 물건도 아니요 말이나 글로써 믿음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믿음이란 조건이 없는 무형의 힘이요 불가사의한 존재다. 믿어주되 조건없이 믿어줄 때 그 믿음이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믿어주기 때문에 믿어 달라는 건 믿음이 아니라 거래다. 흥정적이고 타산이 깔린 믿음은 믿음으로 포장된 상품일 뿐. 상품가지가 끝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믿어달라 해서 믿어주는 사람도 없겠지만 믿지말라 해서 믿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믿음이란 진실의 대명사이면서 양심을 대변하기 때문에 믿음직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고 산다.
믿음직한 사람은 당당하게 보이지만 스스로를 믿고 사는 모습이 더욱 돋보인다. 그런 사람 곁에 있노라면 마음 든든하고 편해서 좋다.
믿음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고 사랑이 있고 꿈과 희망이 보인다. 거기에 신의와 의리가 있고 양보와 이해도 있다.
존경과 예의를 지키는 것도 믿음의 힘인 것이다. 주어도 주어도 아낌없는 믿음속에도 인간적인 감동이 교차하는 법이다.
우리는 한세상 살아가는 동안 믿음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 이 사회는 믿음을 짓고 동시에 그 믿음을 사용하는 터전이다. 신용은 인생의 알파요 오메가로 작용하면서 우리네 삶의 중심에 놓여 있다.
동양의 스승인 공자의 중심사상은 믿음이었다. 전쟁터에서 무기와 식량을 버릴지라도 믿음 만큼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인간의 명운을 믿음으로 짚어준 혜안이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인간의 중심사상이기도 한 믿음은 서양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미국은 개인의 금전관리를 신용의 바로미터로 삼고 신용을 기록 관리한지 이미 오래다.
신용만 좋으면 밑천없이 사업도 할 수 있는 나라인지라 신용관리는 미국 생활의 금과옥조로 통할만하다.
대신 신용타락은 사회적 매장에 버금갈 정도로 가혹하다.
잃어버린 신용을 일으켜 세운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한번 망가진 신용을 회복하려면 남은 평생을 사용해도 어려운게 사실이다. 금전뿐 아니라 믿음이 없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추상같다.
불신불감증이란 의심이 의심을 낳고 불신이 불신을 부르는 현상을 말한다.
믿지 못해 서로 겉돌다 보면 진실이 온데간데 없고 되는 일이 없거니와 사람에 대한 실망이 깊어지면 미움만 쌓일 뿐 사는 재미마저 없기 알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