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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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기본법은 시행됐지만… ‘심각하게 위험한 집’을 판정할 기준이 없다

6월 3일 개정법 시행…국가·지자체에 위험주택 거주자 주거이전 대책 의무화

최저주거기준·주거약자 기준은 있지만 위험등급·측정방법·이주 판단기준은 분산

산업현장은 위험 발견·개선·재평가까지 법제화…주택에도 통합 위험성평가 필요


 거주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이전 대책을 마련하도록 한 개정 「주거기본법」이 2026년 6월 3일부터 시행됐다. 주거실태조사나 주거복지센터 상담 등을 통해 안전이 위협받거나 주거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이주가 필요하다고 확인되면 임대주택 제공, 주거비 또는 이사비 지원 등을 포함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시행규칙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거나 안전상·환경상 중대한 위험이 있는 곳에 거주하는 사람, 고시원·여인숙 등 주택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사람 등을 지원대상으로 정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곧바로 부딪히는 질문은 법 조문보다 구체적이다. ‘심각한 문제’와 ‘중대한 위험’은 무엇이며, 누가 어떤 도구로 측정하고, 어느 수준에서 수리 대신 이주를 결정할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에는 최저주거기준, 주거약자용 주택의 안전·편의시설 기준, 노인 낙상예방 점검표, 공공임대주택의 수선·점검 기준 등 목적별 제도가 존재한다. 그러나 구조·화재·전기·가스·침수·낙상·온열·환기·곰팡이·해충·위생과 거주자의 취약성을 한 번에 평가해 위험등급과 조치기한, 현장개선과 주거이전의 선택을 결정하는 전국 공통의 통합 판정체계는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다.

법은 ‘주거이전 대책’을 의무화했지만, 개별 판정은 현장에 남았다

 개정 주거기본법 제16조의2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이전 대책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주거실태조사와 상담에서 확인된 위험을 단순 통계나 복지상담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실제 임대주택·주거비·이사비 지원과 연결하라는 취지다. 법제처가 밝힌 개정 이유도 취약주택 거주자의 주거안정과 주거수준 향상에 있다. 

 다만 법률상 대책 수립 의무와 개별 가구가 곧바로 지원을 받을 권리는 구분된다. 시행규칙은 지원을 신청한 가구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소득·자산 수준과 주거취약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도록 한다. 결국 행정기관은 한 가구의 주택이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지, 거주자가 그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지, 현장 수선으로 충분한지 또는 이전이 필요한지를 입증할 자료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표준화된 현장조사표와 위험등급이 없다면 같은 상태의 주택도 지역과 담당기관, 평가자의 전문성에 따라 다르게 판정될 수 있다. 한 지역에서는 긴급이주가 필요한 주택으로 판단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단순한 집수리 대상으로 분류할 가능성이 생긴다. 법의 실효성은 결국 ‘위험한 집을 얼마나 일관되게 발견하고 판단하느냐’에 달렸다.

기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적의 기준이 흩어져 있다

현행 최저주거기준은 가구원 수에 따른 최소 주거면적과 방의 수, 전용 부엌·화장실·목욕시설, 구조강도, 방습·환기·채광·난방, 전기안전과 화재 피난구조 등을 규정한다. 최소한의 주거수준을 정했다는 점에서 핵심적인 기준이다. 

그러나“적절한 환기”, “방습에 양호한 재질”,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구조”와 같은 문구를 실제 현장에서 판정하려면 별도의 측정방법과 문턱값이 필요하다. 벽체 수분이 어느 정도면 중대한 위험인지, 곰팡이가 어느 범위까지 확산됐을 때 이주를 검토할지, 실내온도와 조도가 어느 수준이면 고령자에게 긴급위험인지, 욕실 미끄럼과 문턱·계단 위험을 어떤 방식으로 점수화할지는 최저주거기준만으로 결정하기 어렵다.

질병관리청은 2024년 가정용·기관용 노인 낙상예방 실내환경 점검표를 개발해 배포했다. 이는 미끄러운 바닥, 이동 동선, 조명 등 생활공간의 위험요인을 스스로 살피는 데 유용하다. 다만 교육과 자가점검을 위한 도구이므로 법정 위험등급을 결정하거나 집수리·임시이주·영구이전을 명령하는 판정도구와는 성격이 다르다. 

표 1. 국내 주거 관련 기준·도구의 기능과 한계

기준·도구

주요 목적

강점

통합판정의 한계

최저주거기준

최소 면적·설비·구조·환경 기준

법정 최소선 제시

위험도·측정법·조치기한이 세분화되지 않음

주거약자용 주택기준

고령자·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공간별 시설기준 제시

기존 일반주택의 종합 위험등급과는 다름

낙상예방 점검표

가정·기관의 낙상 위험요인 확인

현장에서 쉽게 활용

자가점검·교육 중심, 이전 판정기능 없음

수선·주거지원 기준

노후도 평가와 주택개선 지원

실제 수선사업과 연계

건강·고립·복합위험의 통합평가가 제한적

같은 집도 거주자의 상태에 따라 위험의 크기가 달라진다

주거위험은 주택의 물리적 결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3㎝ 문턱도 건강한 성인에게는 불편일 수 있지만, 보행장애가 있거나 최근 고관절 골절을 경험한 독거노인에게는 중상·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된다. 동일한 곰팡이와 해충 노출도 천식이나 만성호흡기질환을 가진 사람에게 더 큰 건강부담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주거위험을 판단할 때는 결함의 존재뿐 아니라 사고·질병이 발생할 가능성, 발생했을 때의 피해 중대성, 노출시간과 반복성, 거주자의 연령·장애·만성질환·보행능력·인지상태, 독거와 사회적 고립, 응급상황에서의 구조 가능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

주거위험 정량화의 기본 원리

주택 상태 × 사고·질병 발생 가능성 × 피해 중대성 × 거주자 취약성. 이 네 요소를 함께 보지 않으면 실제 위험을 과소평가하거나 필요한 가구를 놓칠 수 있다.

 

물리적 결함은 낮은 수준이지만 거주자의 취약성이 매우 큰 경우와, 거주자는 비교적 건강하지만 붕괴·가스누출·화재대피 불가처럼 단일 결함이 치명적인 경우도 구분해야 한다. 총점이 낮더라도 즉시 조치해야 하는 ‘중대 단일위험’과 여러 중간위험이 누적된 ‘복합 고위험’을 별도로 판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산업현장에는 위험 발견·개선·공유·기록·재평가가 법제화돼 있다

산업안전 분야의 위험성평가는 훨씬 구체적인 폐쇄형 관리구조를 갖추고 있다. 2026년 6월부터 시행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는 사업주가 건설물, 기계·설비, 원재료, 가스, 분진, 작업행동 등 업무로 인한 유해·위험요인을 찾아 사망·부상·질병으로 이어질 위험의 크기가 허용 가능한지를 결정하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도록 한다. 

사업주는 위험성평가 과정에 근로자를 참여시키고, 근로자대표가 요구하면 근로자대표도 참여시켜야 한다. 평가 전 일정과 평가 후 확인된 위험요인, 위험수준, 개선대책과 이행 결과를 근로자에게 공유해야 하며, 실시 시기·담당자·참여자·개선 결과를 포함한 기록을3년간 보존해야 한다. 

산업안전 위험성평가는 평가표를 작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해·위험요인 파악, 위험성 결정, 감소대책 수립, 담당자와 기한 지정, 실행, 결과 공유, 기록과 재평가가 연결된다. 사고가 난 뒤 책임을 묻는 것에 앞서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찾아 제거하는 절차 자체를 의무로 만든 것이다.

표 2. 산업안전 위험성평가와 현행 주거위험 판정의 차이

비교항목

산업현장

일반 주택·주거이전 판정

법적 평가의무

사업주가 위험성평가 실시

전국 공통의 정기 주거위험평가 의무 없음

평가요소

유해요인·가능성·중대성

기준별 항목이 분산되고 거주자 취약성 반영이 제한적

당사자 참여

근로자·근로자대표 참여

거주자 면담과 동의는 있으나 표준 참여절차가 불명확

개선조치

감소대책·담당자·기한 설정

수리·지원·이전의 선택과 기한이 지역별로 달라질 수 있음

결과관리

공유·기록·3년 보존·재평가

통합 기록과 개선 후 위험도 재측정이 제도화되지 않음

집행력

감독·시정·과태료 등과 연결

지원·상담 중심, 책임 주체가 분산

사회적협동조합 수, 세계 주거안전 제도를 비교해 한국형 지표 개발

주거위험을 정량화하고 공론화하기 위해 연구를 이어가는 민간 사회적경제 조직 가운데 사회적협동조합 수의 접근이 주목된다. 조합은 영국 HHSRS, 미국 HUD의 주택검사 기준과 국내 최저주거기준·주거약자 기준 등을 비교하고, 한국의 주택유형과 취약가구 특성에 맞는 주거품질 측정지표를 개발해 왔다.

사회적협동조합 수는 2023년 12월 ‘핵심 진단지표를 이용하여 주거품질을 진단하는 시스템 및 방법’을 특허 등록했다. 공개된 특허정보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주택품질·안전품질·위생품질·보건품질의 네 영역에서 문항별 평가값에 가중치를 적용해 가구별 위험도를 산출하고, 위험등급과 지원 우선순위를 정하는 구조를 담고 있다.

조합의 연구는 주택의 결함 개수를 세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위험의 발생 가능성과 피해 중대성, 거주자의 연령·장애·만성질환·독거·고립 상태를 함께 반영하고, 어떤 위험요소에 더 높은 가중치를 줄 것인지 연구하는 방향이다. 가스누출·감전·붕괴·피난 불가처럼 총점과 관계없이 즉시 조치해야 하는 단일 중대위험과, 여러 중간위험이 누적된 복합위험을 구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주거안전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위험등급별 조치방향을 연구하고 있다. 현장 즉시조치, 소규모 개선, 전문 집수리, 임시이주, 영구이전, 보건·복지·통합돌봄 연계 가운데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를 평가결과와 연결하려는 것이다.

2017년부터 축적한 현장 실증…사고·질병·고립 예방으로 연구 확장

사회적협동조합 수의 설명에 따르면 조합 관계자와 전신 현장조직은 2017년부터 취약가구의 주거환경을 조사하고 개선하며 평가항목의 현장 적용 가능성을 검토해 왔다. 이후 지역별 사업을 통해 대상가구 발굴, 현장측정, 고위험가구 선별, 방역·소독, 청소, 집수리, 안전용품 설치와 사후 모니터링 자료를 축적했다.

조합 자료상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송파구에서 약 380~400가구를 대상으로 단계적 실증을 진행했고, 2024년에는 화성시 1인가구 50가구를 조사해 고위험 10가구를 선별·지원했다. 강서구 반지하 주거환경 개선과 주거안전 솔루션 개발, 2026년 화성시 어르신 100가구 주거위험 측정과 방역·소독 지원 등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연구대상도 넓어지고 있다. 누수·결로의 원인을 줄여 곰팡이 재발을 억제하는 기술, 약제처리에 그치지 않고 유입경로·위생·서식처를 함께 관리하는 통합해충관리, 통합돌봄에서 주거환경 개선이 담당해야 할 역할, 고독사 위험가구와 은둔·고립 청년의 주거상태까지 연결하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 수의 하효선 이사장은 낙상 위험가구를 진단한지 2달 후 실제 낙상으로 사망한 대상자와 곰팡이 제거 후 10년간 앓아온 중증 알레르기 질환이 호전되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주거환경 개선을 미관이나 생활편의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낙상·화재 같은 급성 사고뿐 아니라 곰팡이·습기·해충·환기 불량에 따른 호흡기·알레르기 증상 악화, 고립과 자기방임, 구조 지연 등 주택에서 발생하거나 악화될 수 있는 건강·안전 문제를 사전에 발견하는 예방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2026년 ‘주거위험의 정량화와 주거안전기준 구축 연구’ 공개 예정

사회적협동조합 수는 2026년 중 그동안의 현장경험과 비교연구를 정리한 「주거위험의 정량화와 주거안전기준 구축 연구」 보고서를 배포할 계획이다. 조합 측은 주택, 건축·안전, 위생·방역, 보건·복지 분야의 학계와 전문가, 관련 협회와 현장 경력자, 사회적기업과 사회연대경제 활동가 등이 연구와 검토에 참여하는 구조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해외 제도와 국내 기준의 비교, 주거위험요소 분류, 사고·질병 발생 가능성과 피해 중대성에 따른 가중치, 긴급·고위험·중위험·관리 등급, 현장개선과 이전의 선택기준, 개선 전후 재평가와 사후 모니터링 방안이 포함될 예정이다. 공개보고서를 통해 자체 지표를 곧바로 국가기준으로 주장하기보다 학계와 정부, 지방자치단체, 현장기관이 함께 검증하고 보완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다만 민간이 개발한 평가체계가 행정 판정도구로 사용되려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같은 주택을 여러 평가자가 조사했을 때 유사한 결과가 나오는지, 고위험으로 판정된 가구에서 실제 낙상·화재·질병·응급입원이 더 많이 발생하는지, 환경개선 후 위험점수와 건강·생활상태가 개선되는지, 위험등급별 조치가 비용효과적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최저주거’에서 ‘예방적 주거안전’으로

개정 주거기본법은 위험한 집에 사는 사람을 지원할 법적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법률의 문장만으로는 현장의 욕실 바닥이 얼마나 위험한지, 반복되는 곰팡이와 해충이 거주자의 질병을 얼마나 악화시키는지, 구조적 결함이 수리 가능한지 또는 이주가 필요한지를 결정할 수 없다.

산업현장에서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발견하고, 위험도를 결정하고, 개선대책을 이행한 뒤 기록과 재평가를 실시한다. 사람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집에서도 사고와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찾아 제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주거안전정책은 최소면적과 시설 보유 여부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주거위험의 발생 가능성과 피해 중대성, 거주자 취약성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단계로 전환돼야 한다. 위험가구 발굴–측정–위험등급 결정–현장개선 또는 이전–재평가–사고·질병 변화 추적의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개정법의 실효성을 결정할 것이다.

 기자 : 유지혜    작성일 : 26-07-3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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